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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1일 17:27 민수정 기자

팔순 여행 비극…"우리 가족들 언제와요?" 빈 집서 기다리는 푸딩이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일가족 9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는 비통한 소식이 전해졌다. 가족이 살던 집에 남은 건 반려견 '푸딩'이 뿐이었다.

31일 뉴스1에 따르면 태국 방콕발 제주항공 7C2216편의 최고령 탑승자는 전남 영광 군남면 용암마을에 살던 A씨(80)였다. A씨 내외와 두 딸, 손자·손녀, 친인척 등 9명은 내년 팔순을 앞둔 A씨를 위해 다 같이 여행을 떠났다 참변을 당했다.

사고 후 A씨의 집은 굳게 닫혔고 그의 손녀 B양(6)의 반려견만 마을을 방황하고 있었다. 푸딩이는 용암마을에서 유일한 아이였던 B양의 단 하나뿐인 친구였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날 주인 잃은 푸딩이의 밥을 챙겨줬다. 주인 없는 집을 바라보는 강아지를 보며 밥을 주던 서순자씨(83·여)는 눈시울을 붉혔다. 서씨는 수십 년 전 이곳으로 시집온 A씨 부인과 언니·동생으로 지내왔다.

내년에 읍내 유치원에 다닐 예정이었던 B양은 반려견 푸딩이의 이름도 손수 짓고 밥을 먹이며 온 마을에서 뛰놀았다고 한다. 한 할머니는 B양에 대해 "얼마나 인물도 이쁘고 하는 말도 그 나이답지 않게 잘하는지 몰라. 크리스마스 때는 교회에서 재롱잔치로 춤을 췄는데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박수를 쳤다니까"라고 회상했다.

A씨 딸은 마을 정보화센터 사무장을 맡아 어르신들께 컴퓨터를 가르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을 주민들은 젊은 나이에도 고향에서 어른들을 돕고 사는 모습이 든든했다고 전했다.

오랜 세월 집성촌인 용암마을을 떠나지 않은 A씨는 마을의 큰 기둥이었다. 한부열씨(70)는 담배 한 개비를 태우고는 한숨을 쉬며 "법 없이도 살 분들이었다. 다녀와서 팔순 잔치를 한다고 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한씨는 "20년 전 귀농할 때 포도 농사로 정착할 수 있게 도움을 많이 주셨다. 청년회장에 영농회장에 마을 일은 도맡으면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앞장서시던 분이다"며 "그런 분이 사고를 당했으니 마을이 울음바다가 됐다. 마을에서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유전자(DNA) 확인이 늦어진다니 속이 탄다"고 했다.

군남면 소재 군남중학교 학생들도 이날 오후 군남면사무소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분향소를 방문했다. 학생들은 직접 교사들에게 참배를 요청하고 검은 추모 리본도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학생회장 김나영양(16)은 "새해를 앞두고 일어난 안타까운 참사 희생자가 우리 고향에 있다는 소식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참배하러 왔다"면서 "다시는 이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고 기원했다.

장세일 영광군수 등 이날 오전까지 지역민 200여명이 참사를 애도하기 위해 분향소를 찾은 것으로 파악됐다.

민수정 기자 crysta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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